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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log(나의 이야기)

잃어버린 애착 인형2

by youni900 2024. 6.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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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두근, 딸아이를 만나러 가는 길이 이렇게 떨릴 일인가.

친정에서 눈누난나 그림을 그리며 엄마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둘째. 일단 발걸음을 집으로 향해본다. 오늘 저녁은 돈까스다. 슬플 땐 돈까스지. 대한민국 유아라면 돈까스 마다할 아이가 있을까? 고슴이의 부재를 알리기 전에 일단 돈까스 냄새로 둘째를 홀려놓고, 고슴이의 가출 사실을 고할 것이다. 돈까스가 제발 잘 먹히길 빌어본다. 머리속에 일터에서 다듬어 둔 대사도 다시 한 번 되내어본다. 고슴이는 여행을 간거고, 여행이 끝나야 돌아온다. 여행이 길어지면 꿈에서 만난다. 완벽한 시나리오다. 한숨 한 번 크게 들이켜고, 집안을 한 번 더 뒤진다.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이 가시질 않는다. 정말 내가 그 인형에 더 애착이 있나보다. 애착이 아니라 이젠 집착이다. 몇 번을 뒤집어 엎었던 침대 사이사이와 소파 아래도 꼼꼼히 다시 한 번 살펴보지만, 역시 없다. 하..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을 조금은 경험해보는 거 같네. 

떨어지지 않는 걸음을 옮겨 아이들을 데리러 친정 집으로 가는 길목도 다시 눈을 돌려 혹시나 고슴이가 어느 구석에 튕겨져 나가떨어져 있지는 않은지 살펴본다. 허사라는 것을 알면서도 하지 않을 도리도 없다. 정말 길고양이가 우리 고슴이가 너무 귀여워서 물어가버린걸까?

 

딸아이는 여전히 천진난만이다. 

 

엄마, 고슴이 찾았어? 집에 있어? 

어? 어..어... 그러니까....

내가 소파에  얹어놨다니까? 없어? 고슴이 어디갔지? 이렇게 오래 안보인 적은 없었는데..

 

앗,  기세다. 돈까스를 들이밀자. 일단 저녁을 먹여서 속을 든든히 해두면 그녀의 반쪽을 잃어버린 허한 기분이   것이다. 저녁을 먹이고    집에 가서 같이 찾아보기로 하고,  구워서 바삭거리는 돈까스를  위에 펼친다. 

이게 웬일, 돈까스를 거부한다. 아니 니가 이러면 안되지.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러서도,  돈까스만 찾아서 언니를 질리게 했던 니가 돈까스를 거부하면 되니? 엄마가 온동네 뒤져서 맛집이라고 소문난 데서 사온 돈까스인데. 겨우   먹이고, 주섬주섬 짐을 싸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시 시작된 고슴이 찾기. 수십 번도  물었던 질문을 다시 던진다.

 

집에 가지고  거 확실하지?

응. 맞다니까. 소파에 이렇게  놔뒀어. 

정말? 

응.

그러곤 뭐했어? 

손씻고 종이접기했어. 

정말 집에 가지고 온거지?

맞다니까.

 

그러다 문득, 손에 쥐고 있던게 고슴이가 확실한걸까? 손에 들어오는 작은 다른 어떤 것은 아니었을까? 의심이 들었다.

 

손에, 고슴이 쥐고 있었던거 맞아?

맞아. 내가 휴지로 토끼  만들었는데, 찢어져서 고슴이랑 같이 가지고 있었다구. 

 

앗! 어제는 듣지 못했던 말이다. 

 

 휴지는 어쨌는데?

버렸지. 

고슴이는? 

손에 쥐고.

 

하.... 이제 알았다. 고슴이가 여행간 곳.

 

은색 반짝이는 휴지통 뚜껑을 열었다. 휴지만 한가득이다. 살포시 휴지를 들어본다. 

까꿍. 나 여기 있지롱, 헤헤. 이제 찾았네? 

네, 이놈. 거기 숨어서 잘도 내가 짓던 한숨을 들으며 나를 비웃고 있었겠구나. 

허탈하다. 어제 오늘 내가 얼마나 마음을 졸이고, 집을 들쑤시고 다녔던가.

이제사 웃음이 비실비실 나온다. 

고슴이를 들어올리는 동시에 둘째가 울음을 터뜨린다. 

아니,  울어? 고슴이 찾았는데?

 

마냥 기뻐할  알았던 아이는 고슴이를 찾고서  크게 울어버렸다. 꺽꺽 울던 아이가 울음을 그치고서 내뱉는 말에 머리가 띵 하다.

 

고슴이가 휴지통에서 얼마나 무서웠을까. 더러운데서  얼마나 찾았을까.

 

사랑이 이런건가.. 

 정말 어쩌면 좋지? 너무 귀엽고, 안쓰럽고, 고맙고, 기특하고.. 오만가지 감정이 휩쓸고 지나간다. 

그냥 예쁘다. 

 애착인형. 

우리 오래오래 함께 행복하자. 

 

오늘은 고슴이를 곁에 두고, 행복한 꿈을 꾸렴.

 

그렇게 우리의 잃어버린 고슴이는 다시 돌아오고,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온 밤. 어린 둘째의 머리를 손으로 쓰다듬으며 이틀 동안 겪은 폭풍같았던 감정들을 하나하나 떠올려본다. 피식, 웃음이 나온다. 작은 인형 하나가 가져다  희로애락에 웃고, 울고. 

너희들 덕분에 내가 살아있고, 살아가고 있다는  생생하게 느끼는 하루하루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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